[경향신문] 아시아에 부는 복고 바람 - 강희정
2013.05.06

[기고]아시아에 부는 복고 바람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달 19일부터 두 달간 싱가포르 국립문화유산위원회와 아시아문명박물관과 공동으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페라나칸 전시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점과 더불어 싱가포르 관광청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 개막식에서 로런스 웡 싱가포르 문화부 장관이 축사를 했을 정도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공을 들이는 속내를 읽는 것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페라나칸은 원래 외지인과 동남아 현지인들 간의 혼인으로 태어난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일컫는다. 동남아 각 지역마다 양상은 달랐지만 페라나칸은 중국인 남성과 현지인 여성의 결혼이 절대 다수를 점했다.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페라나칸의 혼합문화’에서 중국계 문화가 중심이 되는 건 그래서이다.
 
중국인의 동남아 이주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15세기 명나라 정화의 원정 이후 해상교역이 발달함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주의 흐름이 있었고, 이어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중국 내부의 혼란과 서구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인한 2차 이주가 이뤄졌다. 15~19세기 동남아에 이주한 중국계의 현지화 결과가 페라나칸인 셈이다.
 
페라나칸 공동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형성됐다. 19세기 초 영국의 싱가포르 개발과정에서 말레이시아 페낭의 페라나칸이 이주하기도 했으나, 싱가포르 중국계의 주류는 2차 이주민이었다. 현지화가 진행된 싱가포르의 페라나칸과 2차 이주민의 정체성은 사뭇 달랐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간판은 페라나칸이지만 정작 전시된 것은 2차 이주 중국계의 유물이 대부분이다. 양자의 차이가 ‘페라나칸 문화’로 뭉뚱그려진 채 싱가포르의 ‘전통’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이는 글로벌 전시회를 통해 싱가포르가 페라나칸 문화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독립했다. 당시의 과제는 신생국가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국가는 모름지기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공유하는 국민들이 세운 정치조직이다. 위로부터의 독립을 이뤘으나 중국계·인도계·말레이계 등 여러 종족으로 형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공동체의 역사를 공유할 수 없었던 싱가포르는 독립 이전에 있었던 동남아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어야 했다. 그 ‘만들어진 역사’의 일부가 이번에 전시된 페라나칸 문화다.
 
21세기 서울에서 전시된 페라나칸 문화는 1960년대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와 겹쳐진다. 싱가포르를 건설한 리콴유는 다민족·다종교·다언어·다문화 사회를 국가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그 과정은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것이었다. 리콴유의 그늘이 반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번 페라나칸 전시에 드리워 있다. 
 
싱가포르의 당면 과제는 ‘리콴유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페라나칸 문화가 21세기 싱가포르의 국가 통합 동력으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단지 분명한 것은 복고의 코드다. 리콴유가 싱가포르 국가 만들기에 매진했던 시기는 박정희의 국가 만들기가 진행되던 무렵이다. 1979년 10·26 발발 열흘 전 한국을 방문한 리콴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접견하기도 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리콴유의 아들이다. 싱가포르의 페라나칸 전시 기획을 ‘리셴룽식 국가 만들기’의 일부라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터이다. 한국·북한·일본만이 아니라 싱가포르에까지 복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향신문 2013-05-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012129005&code=990304